지적재산권소송/영업비밀보호법

본사와 도매점 사이의 영업비밀 관리성

이응세 2020. 2. 9. 19:29

주류 판매 회사인 A 주식회사는 주류면허를 갖고 있는 도매점들과 1년 단위로 일정 지역에 대한 판매 독점권을 주는 대신 도매점들도 A 회사의 제품만 취급하였다.

A 회사는 도매점들이 거래하는 거래처에 대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활용하기 위해 자신의 비용으로 도매점 전산시스템을 구축하였고, 도매점장들은 휴대용 단말기(PDA)나 개인용 컴퓨터를 통해 A 회사의 제품을 취급하는 거래처와 관련된 정보를 입력하였다.

그런데 A 회사의 임직원들이 도매점 전산시스템에 입력된 거래처 정보, 매출 정보, 수금 정보, 구체적인 거래 조건 등을 이용하여 해당 도매점과 경쟁관계에 있는 영업 조직에서 위 정보를 이용하여 경쟁영업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관할지역에 새로운 도매점을 설치하거나 인근 도매점에서 위 도매점의 거래처에 납품하는 방식으로 위 도매점들의 영업과 경쟁하는 판매조직에게 이 사건 도매점 전산시스템의 정보를 사용하게 한 것이다.  

도매점 전산시스템에 입력된 도매점들이 입력한 거래처 정보, 매출 정보, 수금 정보, 구체적인 거래 조건 등의 정보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 문제되었다.

하급심은 이를 영업비밀로 보고 A 회사와 그 임직원이 도매점의 영업비밀을 침해하였다고 보아서 부정경쟁방지법위반을 유죄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판단을 달리하였다.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2호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려면, 상당한 노력(개정전 요건임)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되어야 한다.

여기에서 ‘상당한 노력에 의하여 비밀로 유지된다’는 것은 정보가 비밀이라고 인식될 수 있는 표지를 하거나 고지를 하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대상자나 접근 방법을 제한하거나 정보에 접근한 사람에게 비밀준수의무를 부과하는 등 객관적으로 그 정보가 비밀로 유지·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이 인식 가능한 상태인 것을 뜻한다. 

이러한 유지·관리를 위한 노력이 상당했는지는 영업비밀 보유자의 예방조치의 구체적 내용, 해당 정보에 접근을 허용할 영업상의 필요성, 영업비밀 보유자와 침해자 사이의 신뢰관계와 그 정도, 영업비밀의 경제적 가치, 영업비밀 보유자의 사업 규모와 경제적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위 사건에서 도매점장들은 A 회사가 도매점 전산시스템을 통해 도매점의 정보를 관리해 온 것을 인식하였는데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으므로 그 정보를 비밀로 유지·관리할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 도매점장들이 A 회사에 도매점 전산시스템의 관리를 사실상 위임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제3자가 도매점 전산시스템에 무단 접속하여 정보를 수집하여 사용하였다면, A 회사의 비밀관리 노력을 영업비밀 보유자인 도매점들의 노력으로 보아 영업비밀 침해를 인정할 수 있지만, A 회사와 그 직원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비밀관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또한 도매점장들이 A 회사와 그 직원들이 도매점의 정보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였다고 볼 수 없다.

A 회사의 임직원들이 ‘이 사건 정보가 도매점장들에 의해 비밀로 유지·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도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도매점장들이 도매점 전산시스템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지만, 이것은 A 회사가 도매점 전산시스템의 접속을 위해 설정한 기본적인 본인확인절차에 불과할 뿐 거래처 정보에 대한 예방조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A 회사의 영업담당자나 도매점 영업담당자가 신의칙상 도매점 정보를 경업 관계에 있는 조직에 공개해서는 안 될 의무가 있더라도 그 자체로 그 정보에 대한 비밀관리성을 추단하기는 어렵다. 결국 영업비밀 보유자인 도매점장들이 A 회사 및 임직원들에 대한 관계에서 도매점 정보를 비밀로 관리하였다고 볼 수 없다.

(대법원ᅠ2019. 10. 31.ᅠ선고ᅠ2017도13791ᅠ판결)

본사와 도매점 사이에 영업비밀이 성립할 수 있는지를 판단한 사건으로서, 프랜차이즈 관계에 있는 본사와 가맹점 사이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법리라고 할 수 있다.

이응세 변호사 법무법인 바른 영업비밀변호사